달려라 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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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어머니는 택시운전을 힘들어했다. 박봉, 여자 기사에 대한 불신, 취객의 희롱. 그래도 나는 어머니에게 곧잘 돈을 달라고 졸랐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새끼고 속도 깊고 예의까지 발라버리면 어머니가 더 쓸쓸해질 것만 같아서였다. 어머니 역시 미안함에 내게 돈을 더 준다거나 하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달라는 만큼만 돈을 줬지만, "벌면 다, 새끼 밑구멍으로 들어가 내가 맨날 씨발, 씨발, 하면서 돈번다"는 생색도 잊지 않았다.


맞은편 큐마트의 개점 후 패밀리 마트는 예전처럼 다시 조용해졌다. 그래도 나는 패밀리마트를 계속 이용했다. 나처럼 혼자 자취를 하는 사람에겐 일정한 동선, 일정한 습관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마주보고 앉아 묵묵히 물 끓는 소리를 경청했다. 가족끼리 나누는 불친절이 이상하게 편안함을 주었고. 그것을 충분히 느끼라는 듯 국물은 최선을 다해 끓고 있었다. 아버지는 소매를 걷고 국자를 들었다. 국물 위로 배를 뒤집으며 동동 떠 오르는 복어를 건져주며 아버지는 말했다.
"비싼 거다. 많이 먹어라."
냄비를 다 비울 때까지 우리는 서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비지땀을 흘려가며 복어를 뜯었다. 식사 안에 깃들인 어떤 순수한 집중이 부유하는 먼지들과 함께 빛나던 오후. 아버지는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낸 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복어에는 말이다."
아버지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사람을 죽이는 독이 들어 있다."
"........."
"그 독은 굉장히 무서운데 가열하거나 햇볕을 쬐도 없어지지 않은다. 그래서 복어를 먹으면 짧게는 몇초, 길게는 하루만에 죽을 수 있다."
나는 후식으로 나온 야쿠르트 꽁무니를 빨며 아버지를 멀뚱 쳐다봤다.
"그래서요?"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오늘밤 자면 안된다. 자면 죽는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뭐라고요?"
"죽는다고."
나는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요?"
"나는 어른이라 괜찮다."
나는 몸을 꼰 채 식탁 위에 수줍게 서 있는 아버지의 야쿠르트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주방에 커피를 시켰다.
"근데 왜 나한테 이걸 먹였어요?"
아버지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네가...... 어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어릴 때 이걸 먹교 견뎌서 살아남았다."
"정말이요?"
"그럼."
아버지는 덧붙여 말했다.
"옆집 준구네 삼촌도..... 이걸 먹고 주었다."
나는 준구네 삼촌이 사고로 죽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것이 복어 때문인지는 몰랐다.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아버지, 전 이제 어떡하죠?"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오늘밤 자면 안된다. 자면 죽는다."


"전공이 뭐예요?"
아마 내가 문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그는 자신의 문학관에 대해 열변할 것이고, 미술을 전공한다고 하면 개중 유명한 미술작가를 들먹일 것이며, 이벤트학이나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하면, 또 '그게 뭐하는 과냐' '언제 생겼냐' '그거 졸업하면 뭐 하게 되냐' 등의 질문을 퍼부을 것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그는 나를 '안다'라고 말하겠지.





Posted by apple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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