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양의 신화가 (사장이라는) 인격을 통해 전파된다면, 사회보장의 신화 또한 (복지사 등) 인격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 그런 수준이 된다면 보수 정권이 들어서고 복지제도가 후퇴했을 때, 가난한 자들이 강력한 저항을 시작할 것이다. 복지정치를 하겠다면, '엄청나게 더 많은 복지'를 '개별적이고 인격적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방식의 딜레마가 있다. 복지에 대한 기억의 역사가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가난한 청년이 복지를 지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들의 지지가 있어야 복지의 정치를 시작할 수 있다.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 '진짜' 빈곤 보고서
몇 달 전에 일부를 약간 읽고 며칠 전에 다시 접하게 되어 전체 글을 다 읽었다. 굉장히 가슴 아픈 글이다. 평소 궁금했던 청년층의 보수화에 대한 궁금증도 일부 해결이 되고
2011년 4월 '민주정책연구원'에 기고된 글이라고 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현실. 과연? 헬 조선의 칭호가 사라질지, 더 업그레이드 될지. 아무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