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생각없이 50% 할인이라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일단 1권 만 주문.
별 생각없이 좀 읽어볼까나~ 하다가... 하루만에 다 읽어버림.
바로 그 다음날 2, 3권 주문.



정말이지 나는 겐짱의 웃는 얼굴이 좋다. 그냥 마음이 놓인다. 이 세상도 인생도 다 좋은 거라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흔들림이 없으니까. 힘이 넘치니까.
나도 그렇게 믿고 있어.



어느새 네기시가 옆에 와서 울음이 터질것 같은 목소리로 렌을 불렀다.
"100미터였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렌이 네기시에게 말했다.
"신지는 힘이 있어서 후반에 치고 나가는 타입 같지?"
네기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미여한테는 나도 놀랐어."
"신지도 뛸래?"
렌이 나에게 물었다.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물어서 그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 순간 강렬한 열풍이 가슴팍으로 혹 불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응."
운명같은 것을 느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맥 빠진 대답이었다.

방과 후 렌과 함께 육상부를 견학하러 갔다가 그대로 가입이 결정되었다.



용서하거나 체념했다기 보다 이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겐짱과 무관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는 기분에 몸과 마음이 다 쓸쓸해지는 기분이다.
다 끝난 일이다. 하지만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나의 한심한 시합에 대해서 보고할 때마다 겐짱은 얼마나 웃고 화를 냈던가. 얼마나 세세하게 조언해주었던가.



"신지?"
"신지?"
시끄러워.
"신지, 울고 있냐?"
"신지?"
"시끄러워!"
나는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소리를 지렀다.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렌이 가까이 왔다. 나는 우는 얼굴을 보이기 싫어 얼굴을 무릎에 댔다. 렌은 말이 없다. 바로 곁에서 녀석이 그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네깟 놈 얘기는 들어주지 않을 거다, 평생.
"난 네가 못나 보이는 게 싫어!"
내 사타구니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그게 죽도록 싫단 말이야. 내가 못나 보이는 것보다 더 싫어!"
이렇게 울음 섞인 소리로 떠들고 싶지 않다.
"도망치지 마. 그게 제일 보기 싫어."
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들이서 내내 침묵하는 동안 달은 다시 구름 뒤로 솜고, 렌이 말했던 그 기묘한 동물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어둠 속이지만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겨우 눈물을 그칠 즈음 길 쪽에서 네기시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빛이 진지하다. 렌의 진지한 눈빛을 본 것이 언제였더라, 하고 멍하니 생각했다.
왠지 가슴이 찡했다.
렌은 거짓을 모르는 남자다. 친구한테나 세상한테나, 말이든 행동이든. 부담스러울 정도로 천진하다. 적당히 둘러댈 줄도 모르고 쓸데없는 군소리도 일체 없다... 그래서 가끔 드물게 날리는 한 마디가 가슴을 찡하게 만들어버린다.
"내가 너를 제칠 거야. 언젠가"
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없이 진지하게.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냐?"
"가혹한 질문이네."
다카나시는 또 킥킥 웃었다.
"100퍼센트."
"진심이야?"
"너, 너무 심하게 말한다. 나는 죽으나 사나 100퍼센트야."
다카나시는 한쪽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언더스탠?"
나는 말없이 콧등에 주름을 모았다.
'죽으나 사나 100퍼센트,' 듣고 보니 괜찮은 캐치프레이즈네.
녀석, 까불까불하지만 의외로 대단한 놈일지도 모른다. 어지간한 놈이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야!"
다카나시의 목소리다. 이런! 쳐졌구나! 아니, 이럴 때가 아니다!
"야!"
나도 소리쳤다. 렌의 왼손이 수평으로 쓰윽 올라온다. 나는 오른손을 뻗는다. 렌의 손에 배턴을 밀어 넣는다. 당겨지는 느낌에 배턴을 놓는다. 배턴과 함께 렌이 사라져간다. 이 순간이 좋다. 기분이 엄청나게 좋다. 최고다. 나 자신마저 사라져버리는 기분이다. 몸도 영혼도 전부 렌에게 맡겼다. 그리고 내게서 배턴을 받은 렌은 소름 끼치는 속도로 직선을 쌩하고 날아간다. 와! 봐라! 센바하고 별 차이가 없어! 그래, 그래야지. 별로 처지지 않았어. 어떻게 이런 일이!






Posted by apple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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