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세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
이도저도 아닌 순간에 서른살은 온다니 가혹하구나...
.
.
그리고
.
.



삼십대
최승자

철없어 흘리던 피는 달디달지만,
때로는 몇 개의 열매도 맺었지만,
철들어 흘리는 피는 왜 이리 쓰디쓸까.

우리는 벌써 중년
자칫하다가는 중견
하마터면 중늙은이
오 이 삶의 중노동!

기억하시는지 그대들,
그 시절 그 노래를,
(얘들아 나와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들고 망태 들고
뒷동산으로)
혹은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사람들아 내 나이를 세지 마세요.
가끔 가끔 나이를 잊고 살다가
자의든 타의든 내 나이를 가늠할 때 마다 슬프다.
바람에도 흔들리던 20대일때는 지금의 나이가 되면 뭔가 달라지겠지 싶었는데...
숫자는 나이일 뿐이라고 쿨하게 말하기에는 단단해지지 않은 나.


중요한 것은
최승자

말하지 않아도 없는 것이 아니다
나무들 사이에 풀이 있듯
숲 사이에 오솔길이 있듯

중요한 것은 삶이었다
죽음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거꾸로도 참이었다는 것이다

원론과 원론 사이에서
야구방망이질 핑퐁질을 해대면서
중요한 것은 죽음도 삶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삶 뒤에 또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
죽음 뒤에 또 죽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Posted by apple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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