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우습다

카테고리 없음 2012. 3. 29. 00:46

참 우습다

최승자


작년 어느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이것 저것 하다가
최승자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을 잠시 손에 들고 몇개의 시를 읽는다.
내 취향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편이긴 한데
참 우습다라는 시는 아릿하면서 쓸쓸함이 가득.
막연하게 슬프다라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의지로는 거스를 수 없는 체념을
한숨과 함께 살포시 내놓는 얼핏 드러나는 긍정은 살가우면서 정겹다.

나이 세는 것에 무심한 나날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이면
나 또한 어느날 문득 내 나이를 돌이켜보고 깜짝 놀라겠지. 
하긴 요즘에도 느닷없이 나이가 몇이냐는 질문에는 잠시 머릿속에서 내가 몇살이었지?
하고 잠깐이지만 버퍼링이 생기니...

한때는 얼른 나이를 먹어 무료한 노인이 되고 싶었다. 
딱히 할일 없이 
복덕방 앞에서 야트막한 뒷산에서 동네 놀이터에서 공원에서 해가 늬엿 늬엿 기울때까지 
그런 변함없는 나날들이 그러한 평온함이 무척이나 간절했었던 시절에는 얼른 늙어버리고 싶었다.
독거 노인이 되겠군. ㅋ
폐지 줍는... -0-)/ 에~ 

Posted by apple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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